[책마을] 오스카엔 '은메달'이 없다

입력 2023-03-31 18:02   수정 2023-04-01 00:34

오스카상(미국 아카데미상) 트로피는 금색이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없다. 1등과 ‘나머지’만 있을 뿐. 화려한 무대 뒤편에선 트로피를 거머쥐려는 영화계 인사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여는 이유는 우수한 영화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나 그렇다. <오스카 전쟁>의 저자 마이클 슐먼은 우수한 영화를 기리겠다는 허세를 앨프리드 히치콕의 ‘맥거핀’에 비유한다. 아카데미상에서 작품 수준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맥거핀은 영화에서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물이나 물건 등을 뜻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 기자 슐먼이 정리한 영화산업의 후일담은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그는 품격이라거나 페어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카데미의 부끄러운 과거를 모았다. 슐먼은 영화각색가조합과 영화배우협회를 비롯한 단체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아카데미가 ‘단순히 트로피를 나눠주는 단체’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영화계 거물들이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굳히기 위해 아카데미를 통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심지어 오스카상이 대부분 잘못된 작품에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브로크백 마운틴’이 ‘크래쉬’에 작품상을 빼앗겼다”며 “2400여 년 전 에우리피데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가 아테네 연극제에서 3등으로 밀린 것만큼 충격적”이라고 혹평한다.

가장 악랄한 사례는 오슨 웰스 감독의 1941년작 ‘시민 케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 ‘케인’이란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시민 케인’의 수상을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야유와 경멸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작품상을 받지 못하고 각본상 하나를 수상하는 데 그쳤다. 이 작품은 이후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이 재조명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슐먼은 ‘서사적으로 대담하고 시각적으로 실험적인’ 이 작품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책의 후반부는 비교적 최근 사건에 할애한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그가 배급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흥행을 위해 ‘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작품상을 점령했다. 저자는 2015년 해시태그 운동 ‘#너무하얀오스카(#OscarSoWhite)’도 주목한다. 인종적 다양성을 무시해 온 관행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이후 후보작 선정 절차가 유의미하게 바뀌었다고 본다.

<오스카 전쟁>은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경쾌한 문체가 돋보인다. 샘 와슨의 <더 빅 굿바이(The Big Goodbye)>와 더불어 최근 영화산업을 가장 자세하게 담은 책이다.

이 글은 WSJ에 실린 마크 웨인가튼의 서평(2023년 3월 10일) <‘Oscar Wars’ Review: Hollywood’s Biggest Night>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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